역사학 관련된 이야기를 다루면서 이전 글에서는 헤로도토스가 쓴 책인 역사를 통해 마라톤 전투의 사료를 살펴봤습니다. 사료라는 것은 과거의 사람들이 남겨놓은 유물, 유적, 문헌과 같은 역사적인 자료를 의미합니다. 즉 역사에 대한 객관적인 증거가 될 수 있는 기록을 말합니다. 사료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역사학에서 과거를 복원하는 데 꼭 필요한 사료
최근에는 현대 과학이 발전하면서 우주를 정복하거나 유전자를 복제하는 등 영화에서만 일어났던 일들이 실제로 현실화 되고 있습니다. 만약에 타임머신을 개발할 수 있다면 우리는 과거에 일어났던 역사의 진실을 정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마라톤 전투의 진실을 알아낼 수 있고 불에 타서 없어진 황룡사 9층 목탑도 과거로 돌아가 실제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과학 기술이 발전했다고 해도 과거에 일어났던 일을 똑같이 재현해 낸다는 건 어려운 일입니다. 따라서 과거에 대한 사실이 적혀있는 사료는 굉장히 중요한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는 2008년에 국보로 지정되어 있던 숭례문이 불에 타서 없어지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1960년에 숭례문을 보수하면서 기록해 놓은 자료인 정밀실측 도면이 남아있어 복원하는 데 큰 힘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과거를 사실적으로 기록해 놓은 사료가 있으면 과거의 역사를 현재에 복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사료가 없어서 복원을 못 하는 몇 가지 사례들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조선의 거북선이 대표적입니다. 거북선은 과거 조선과 일본 사이의 전쟁에서 조선의 장군 이순신이 전쟁에서 승리하는 데 큰 역할을 했던 함선입니다. 이러한 거북선에 대한 사료가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어떻게 생겼는지 정확하게 알 수가 없어 복원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럴 때는 정말 타임머신이 있다면 과거로 돌아가서 거북선의 모양을 확인할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운 마음이 많이 듭니다.
역사학 관점에서 객관적인 사실의 기록
사료는 기본적으로 과거의 기록입니다. 이 기록을 살펴보기에 앞서 과연 사료가 작성될 당시에 객관적인 시선으로 기록된 게 맞는지 확인하는 절차가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역사서는 김부식의 삼국사기와 일연의 삼국유사가 있습니다. 이 두 가지의 책은 사실보다는 꾸며진 이야기가 많이 기록되어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역사의 한 부분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삼국사기에서는 박혁거세가 알에서 태어났다고 기록하고 있고 삼국유사에서는 환웅이 하늘에서 내려와 한 여자와 결혼해 단군을 낳았다고 적혀 있습니다.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이야기지만 한국에서는 역사적인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 부분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최근 역사학자들은 하늘을 섬기던 부족과 곰을 숭배하던 부족과의 결합이 영웅담으로 각색된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박혁거세나 주몽이 알에서 태어났다는 이야기도 국가의 정당성과 자주성을 주장하기 위한 설정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사료 중에서는 객관성이 검증되지 않았거나 사실이 왜곡되어 전해지는 경우도 생길 수 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 적혀 있는 역사 이야기
사료가 왜곡되어 기록될 수도 있다는 부분은 조선왕조실록의 광해군에 대한 기록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은 조선의 1대 왕부터 마지막 왕까지의 이야기를 기록한 책입니다. 이 중에서 광해군에 대한 기록은 역사적인 사실로 보기에 어렵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그 이유로는 다른 왕들의 이야기와는 다르게 광해군에 대한 기록은 수정본이 존재하는데 완성본과 비교했을 때 수정되거나 삭제된 이야기가 너무 많습니다. 예를 들어 광해군이 눈병에 걸려서 눈이 충혈되었다는 이야기가 광해군의 난폭한 성격이 눈을 붉게 만들었다는 것으로 수정이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완성본과 수정본 사이의 이야기가 다른 경우가 너무 많아 진실이 아닌 왜곡되어 기록되었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광해군에 대해 폭군으로 기억하고 있는 것은 이렇게 왜곡되어 기록된 책들 때문이 아닐까요? 당시의 역사적인 흐름을 다시 한번 되짚어볼 필요는 있습니다.
광해군에 대해 엇갈리는 평가들
광해군에 대해 기록하고 있는 광해군 일기를 살펴보면 명나라는 조선과 일본이 전쟁을 할 때 조선을 도와줬었는데 정작 그들이 도움을 요청했을 때는 명나라를 배신하고 청나라를 지지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광해군 일기를 수정 및 완성한 사람들은 서인 세력에 속해있었는데 그들은 기본적으로 명나라와의 의리를 지키고 청나라와 끝까지 싸워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광해군은 명나라의 국력이 많이 약해져 있고 청나라의 영향력이 점점 커지고 있었기 때문에 청나라에 맞서 싸우는 건 위험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따라서 명나라가 청나라와의 전쟁에서 조선에 도움을 요청했을 때 광해군은 명나라에 군대를 파병은 했지만 곧바로 청나라에 항복하면서 실제로 전투에 참여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태도는 서인 세력에게는 명나라에 대한 배신으로 여겨졌고 훗날 광해군에 대해 기록을 할 때 왜곡된 내용을 작성하게 됩니다. 이렇게 사료가 반드시 진실만을 기록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에 대한 좋은 예가 광해군 일기입니다.
지금까지 사료는 역사의 진실을 담고 있지만 광해군의 예시를 통해 무조건 객관적인 사실만이 기록된 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사료를 통해 역사를 알아갈 수밖에 없는데 만약 기록한 사람이 허구의 이야기를 그럴듯하게 적어놓았다면 역사는 존재의 가치를 상실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요? 과거의 모습을 정확하게 알 수 없고 기록에 의존해야 하는 우리로서는 사료에 문제가 생긴다면 역사에 대한 믿음이 없어질 수 있습니다.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요? 다음 글에서는 역사가들이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어떻게 사료를 연구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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