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에서 사료는 과거를 밝혀내는 증거로서 가치가 높습니다. 따라서 이 사료를 발견하는 역사가의 역량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랑케처럼 객관적으로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서술하는 사람도 있지만 자신의 주관적인 해석과 평가를 정리해 기록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랑케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사료를 통한 객관적인 역사의 서술은 역사가가 주관적으로 선택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료를 발견하는 역사가의 눈 또한 굉장히 중요합니다.
관미성 전투의 역사적 의미
관미성 전투는 전략적 요충지인 관미성을 차지하기 위해 고구려와 백제 사이에 일어난 전쟁으로 육지에서 일어났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바다에서 수군이 벌인 전투라고 주장하는 역사학자들도 많습니다. 무엇이 진실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먼저 김부식의 삼국사기에서 당시 고구려의 왕이었던 광개토대왕의 기록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책에서는 관미성 전투에 대해 사면이 바닷물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20일 동안 일곱갈래로 나누어 공격하며 성을 함락시켰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닷물이라는 단어가 나오기는 하지만 여전히 전투가 실제로 어떤 방식으로 전개되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또 다른 사료를 찾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만주 지역에 가보면 광개토대왕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이 비석에는 광개토대왕이 수군을 이끌고 백제를 토벌하였다는 기록이 적혀 있습니다. 수군이라는 단어가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여러 사료들을 찾아보고 해석하면서 역사의 진실에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고구려는 육군이 강했던 대표적인 나라입니다. 만약 랑케처럼 객관적인 사실만 중요시한다면 고구려가 강력한 수군을 보유한 해양 국가라는 사실은 밝혀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고구려가 왜 전쟁에서 육군만 이용했을 거라고 생각하는가? 와 같은 의문을 가지고 새로운 관점에서 고구려를 바라봐야 해양 국가로서의 모습이 드러납니다. 이렇게 사료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여러 역사가들에 의해 새롭게 해석되어 또 다른 의미로 재탄생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료를 바라보는 역사가의 주관
역사가의 판단과 해석에 따라 역사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이 달라진다는 것은 발해라는 나라를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발해는 고구려의 역사를 계승해 발전한 문명국가로 역사가의 연구를 통해 18세기 이후에 알려진 나라입니다. 18세기에 북방 영토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던 유득공은 발해고 라는 책을 통해 남북극 시대라는 표현을 쓰면서 고구려의 유민이었던 대조영이 발해로 건너가 문화를 계승시키는 데 많은 역할을 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객관적인 사실만 가지고는 역사를 완벽하게 탐구하기 어렵습니다. 역사학자가 그 시대를 이해하고 일관성을 가지고 연구함으로써 역사는 확장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사료를 통해 객관적인 사실을 파악하고 역사가의 주관에 의해 선택한 사료에 따라 역사가 다르게 보일 수 있다는 내용을 알게 되었습니다. 랑케가 근대 역사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면서 역사학이 하나의 독자적인 학문으로 인정받는 데 큰 공을 세웠지만 단순히 사료를 검증하는 절차뿐만 아니라 역사가의 주관적인 해석도 역사를 완성하는 데 꼭 필요합니다. 영국의 역사가 에드워드 카는 이 내용에 동의하면서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표현했습니다. 물론 주관적인 해석만 중요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주관적인 해석에만 초점을 맞추게 되면 역사가가 과거에 대해 말한 모든 의견들이 다 역사가 되는 일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반대로 객관적인 사실인 사료만 연구해서는 역사에 대해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너무 많습니다. 따라서 역사가는 역사에 대한 자신의 주관적인 의견을 뒷받침할 수 있는 사료들을 찾아 증거로 채택합니다. 이 과정을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표현합니다.
일연의 삼국유사는 제목만 보면 고구려, 백제, 신라 세 나라의 역사를 서술한 책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그 이전 시대인 고조선의 역사도 함께 담고 있습니다. 정확하게는 한국의 최초 역사로 하늘에서 내려온 환웅과 웅녀의 결혼으로 단군이 태어나 고조선을 세웠다는 이야기부터 다루고 있습니다. 삼국유사보다 먼저 만들어진 삼국사기에서도 기록되지 않은 고조선의 역사입니다. 역사가들은 고조선의 탄생을 책에 기록함으로써 우리 민족이 역사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도록 한 작가의 의도였다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물론 환웅이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이야기는 과학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신화적인 요소이지만 일연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일연이 삼국유사라는 책을 쓴 시기는 고려가 몽골의 침략을 받아 국가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는 고려가 몽골의 간섭에서 벗어나기를 희망했고 고려의 역사가 중국과 대등하다는 자신의 역사관이 널리 퍼지기를 원했습니다. 따라서 삼국유사는 이러한 일연의 주관이 포함되어 단군의 기록이 소개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민족에 대한 자부심과 자신감을 역사에 담아 드러냈고 고려에서 살면서 느낀 자신의 주관과 객관적인 사실들을 적절하게 섞어 삼국유사라는 역사서를 편찬하게 되었습니다. 요즘은 객관적인 사실인 사료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역사가는 없습니다. 역사가의 주관적인 해석과 그것을 뒷받침해 줄 수 있는 증거가 되는 사료들을 찾아서 연구한 결과물이 역사가 됩니다. 이렇게 역사가의 주관과 사료의 만남을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표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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